신시어리 홈페이지의 검색창에는 두 종류의 말이 들어옵니다. 하나는 "텀블러", "스탠바이 360 허브스탠드"처럼 찾고 싶은 굿즈의 이름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입사원에게 줄 3만 원 이하 웰컴키트 추천해주세요"처럼 상황을 설명하는 문장입니다. 이름을 건넨 고객께는 그 굿즈를 바로 보여드리면 되고, 문장을 건넨 고객께는 이야기를 듣고 어울리는 것을 골라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검색창은 고객이 단어를 건넸는지, 문장을 건넸는지부터 알아야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지만 검색창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신시어리의 검색은 몇 가지 규칙으로 이 구분을 해왔습니다. 물음표가 있으면 문장, "추천해주세요" 같은 표현이 있으면 문장, 띄어쓰기가 여러 번 들어가면 문장, 열다섯 글자를 넘어도 문장. 규칙은 성실했고, 조금 지나치게 성실했습니다. "스탠바이 360 허브스탠드"는 띄어쓰기가 두 번 들어갔다는 이유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품 이름이 조금 길었을 뿐인데, 검색창은 고객이 긴 사연을 털어놓았다고 믿은 것입니다.
규칙에 예외를 하나 더하면 다른 곳에서 새 예외가 생겼습니다. 열다섯 글자를 스무 글자로 늘려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규칙은 점점 오래된 관공서의 서류 양식을 닮아갔습니다. 그러다 TypeSafe라는 회사의 AI Jev를 검색에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꽤 놀라웠지만, 이 글을 쓰게 만든 것은 정확도가 아니었습니다. Jev가 가끔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석판!"은 단어일까요, 문장일까요
잠깐 쉬운 질문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식당에서 "여기요!"라고 부르는 것은 단어일까요, 문장일까요. 글자만 보면 한 단어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직원은 "이쪽으로 와주세요"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다가옵니다. 한 단어로 된 문장인 셈입니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공사장에서 건축가와 조수가 "벽돌", "기둥", "석판" 같은 단어만으로 일하는 장면을 상상했습니다. 건축가가 "석판!" 하고 외치면 조수는 석판을 가져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묻습니다. 이 "석판!"은 단어일까요, 문장일까요. 그의 대답은 단순했습니다. 말의 뜻은 생김새가 아니라, 그 말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쓰이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신시어리의 옛 규칙은 말의 생김새만 보고 있었습니다. 글자 수, 띄어쓰기, 물음표. 하지만 고객의 마음은 생김새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스탠바이 360 허브스탠드"는 길어도 굿즈를 가리키는 손가락이고, "텀블러 추천"은 짧아도 함께 골라달라는 부탁입니다. 규칙은 글자를 세느라, 정작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묻지 않았던 셈입니다.
0.2초 동안 일어나는 일
Jev는 긴 대답을 쓰는 AI가 아닙니다. 질문을 받으면 정해진 보기 중 하나를 고르고, 그 답에 얼마나 자신 있는지를 숫자로 함께 알려줍니다. 신시어리는 Jev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검색어는 굿즈의 이름인가, 골라달라는 부탁인가, 아니면 어느 쪽인지 말하기 어려운가.
저희가 직접 만든 시험 문장 100개로 비교해 보았습니다. 옛 규칙은 한 묶음에서는 절반, 다른 묶음에서는 넷 중 셋을 맞혔습니다. Jev는 자신 있게 답한 문장을 모두 맞혔고, 한 번 판단하는 데 걸린 시간은 대개 0.2초 남짓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오래 들여다본 장면은 따로 있었습니다. 마흔 개의 문장 중 두 개 앞에서 Jev는 "이건 확신하기 어렵다"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신시어리는 Jev가 충분히 자신 없을 때는 판단을 옛 규칙에게 넘기도록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번, 오래된 규칙이 조용히 정답을 냈습니다.
생각해보면 옛 규칙은 한 번도 망설인 적이 없었습니다. 띄어쓰기가 두 번이면 언제나, 단호하게 문장이었습니다. 틀릴 때조차 자신만만했습니다. 우리가 기계에게 기대하던 미덕이 바로 그 단호함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 단호함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입니다.
몽테뉴의 저울
모른다는 것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Socrates)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점에서 자신이 조금 더 지혜롭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그 뜻을 곱씹어볼 기회가 적습니다.
제가 더 좋아하는 장면은 프랑스의 작가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1533~1592)의 것입니다. 몽테뉴는 자신을 위한 메달을 하나 만들었는데, 거기에는 양쪽 접시가 수평을 이룬 저울과 함께 이런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 그는 평생 자기 생각을 저울에 올려보고, 뒤집어보고, 다시 올려보며 글을 썼습니다. 우리가 '에세이'라고 부르는 글의 이름도 '한번 시도해 본다'는 뜻의 그의 책 제목 『에세(Essais)』에서 왔습니다.
Jev가 알려주는 숫자를 보며 저는 그 저울을 떠올렸습니다. 한쪽 접시에는 "굿즈 이름", 다른 쪽에는 "골라달라는 부탁"이 올라가 있습니다. 저울이 한쪽으로 분명히 기울면 그대로 판단하고, 수평에 가까우면 판단을 미룹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저울의 눈금이 정직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80% 자신 있다"고 말한 답들을 모아보면 실제로 열 번 중 여덟 번쯤 맞아야, 그 숫자를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으니까요.
물론 Jev가 몽테뉴처럼 스스로를 돌아본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망설임이 숫자로 드러나면, 사람은 그 망설임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자신 있을 때는 맡기고, 망설일 때는 다른 길로 돌려보내는 것. 이 간단한 방법 덕분에 신시어리의 검색창은 조금 더 똑똑해졌을 뿐 아니라, 조금 더 정직해졌습니다.
단호한 사람이 꼭 믿음직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조금 민망한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기계에게는 "모르면 모른다고 하라"고 하면서, 사람에게는 늘 자신 있는 대답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회의에서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됩니다!"라고 외치는 사람이 더 유능해 보이는 순간이 분명 있습니다. 띄어쓰기 두 번이면 무조건 문장이라고 외치던 저희의 옛 규칙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의사가 "이 검사만으로는 단정하기 어려우니 하나만 더 확인해 보죠"라고 말할 때, 우리는 오히려 그 의사를 더 믿게 됩니다. 믿음은 언제나 옳은 사람에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디까지 아는지 솔직하게 말해주는 사람에게 생깁니다. "모르겠다"는 말은 대화를 끝내는 말이 아니라, 다음 질문을 위해 자리를 비워두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확신은 확인한 만큼만 생깁니다
신시어리가 하는 일에도 이런 저울이 놓여 있습니다. 신시어리는 고객의 철학이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사랑받는 방법을 만듭니다(Make Your Values Beloved). 그런데 기업과 기관이 오래 다듬어 온 가치가 받는 분의 책상 위에서 어떻게 느껴질지는 처음부터 알 수 없습니다. 사진 속에서 예쁜 제품이 매일 쓰기에도 편할지, 선명하게 찍힌 로고가 여섯 달 뒤에도 그대로일지, 저희도 처음에는 모릅니다.
그래서 신시어리는 하나의 제품을 선보이기까지 6개월 이상을 들이고, 제품을 고를 때는 60일 이상 직접 써봅니다. 인쇄가 잘 되는지, 오래 써도 괜찮은지, 안전한지까지 하나씩 확인합니다. '확신할 수 있는 선택(The Definitive Choice)'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저희에게 확신은 처음부터 가지는 기분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하나씩 확인한 만큼만 생기는 결과입니다. 저울이 기울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만드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시어리는 AI와 그동안 쌓아온 제작 기록, 그리고 꼼꼼한 검수 파트너들의 손길을 함께 씁니다. 기술이 자신 있는 곳에서는 기술이 빠르게 일하고, 기술이 망설이는 곳에서는 사람이 한 번 더 들여다봅니다. 검색창에서 Jev가 판단하지 못한다고 솔직히 말해주던 두 번의 순간은, 저희가 늘 바라던 기술과 사람의 관계를 아주 작게 보여준 셈입니다.
갸웃거릴 줄 아는 지능
AI가 점점 더 많은 답을 내놓는 시대에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틀린 답보다, 틀렸는지 알 수 없는 답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확신하는지 솔직하게 보여주는 AI는 우리에게 언제 맡기고 언제 다시 확인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경계에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 남아 있습니다. 무엇을 물을지 정하고, 빠진 이야기를 찾고, 결과를 책임지는 일입니다.
공사장의 건축가가 "석판!"이라고 외쳤을 때 조수가 고개를 갸웃했다면, 건축가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한 번 더 설명했을 것입니다. 그 갸웃거림 덕분에 엉뚱한 돌이 벽에 끼워지는 일을 막을 수 있었겠지요. 모르는 것을 아는 AI가 반가운 이유는 모든 것을 알아서가 아니라, 갸웃거릴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갸웃거림을 알아채고 다시 묻는 과정에서, AI에게 약간의 인간다움이 느껴집니다.
Sincerely Yours,
띄어쓰기 두 번에 문장이 되던 시절을 조금 그리워하는 신시어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