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타월에 새겨진 ‘가갸날’을 소리 내어 읽어봅니다.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름입니다. ‘가갸’ 하고 입을 움직이다 보면 처음 글자를 배우던 때로 잠시 돌아간 것 같습니다. 가갸날은 한글날의 처음 이름입니다. 매일 쓰는 글자를 기념하는 날에도,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이름이 있었습니다.
이 오래된 이름을 들여다보다 보니, 평소 무심히 쓰던 말들도 새삼 궁금해집니다. “밥 먹었어?”라는 메시지를 받으면, 우리는 점심메뉴를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때에는 “응, 잘 지내”라고 답합니다. 식사 여부를 물었는데 근황으로 답해도 대화가 무사히 이어집니다. 한국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난감한 일일 것입니다. 문법책에는 분명 의문문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실제로는 마음을 건네는 문장이었으니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말에는 이렇게 사전보다 더 많은 것이 들어 있습니다. 걱정을 곧장 말하기 쑥스러운 마음, 따뜻한 한 끼로 사람을 챙기는 습관, 대답을 들으면 비로소 놓이는 안도감. 우리는 말을 배우면서, 그 말을 주고받는 사이의 온도도 함께 배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 쓰는 언어는 우리의 하루를 얼마나 깊이 만들고 있을까요?
함께 사는 방식이 말에 남습니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은 『철학적 탐구』에서 언어를 말하는 일이 어떤 활동, 곧 삶의 형식의 일부라고 설명했습니다. 말의 뜻을 이해하려면 그것이 사용되는 생활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앞서 나눈 밥 이야기도 그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같은 질문이라도 병원 문진표에 적혀 있을 때와 어머니의 메시지로 도착했을 때, 우리가 건네는 답은 달라집니다.
스웨덴에는 커피와 간식을 곁들이며 잠시 쉬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가리키는 ‘피카(fika)’가 있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행동에 대화와 쉼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스페인어의 ‘소브레메사(sobremesa)’는 식사를 마친 뒤에도 식탁에 머무는 시간을 뜻합니다. 접시가 비워진 다음에도 함께하는 시간에는 이름이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식사가 끝나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그 이름을 배우고 나면 조금 더 앉아 있고 싶어집니다.
물론 스웨덴어를 몰라도 다정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스페인어를 몰라도 식탁에서 세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어느 언어도 다정함을 독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떤 경험에 이름을 붙여 함께 사용하면, 그 경험을 알아보고 다시 청하기가 쉬워집니다. 이렇게 보면 말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긴 시간을 보관하는 작은 서랍 같습니다. 생활이 말을 만들고, 그 말이 다시 생활 속의 자리를 얻습니다.
우리의 목소리에 우리의 글씨가 있다는 것
한국어에는 ‘보슬보슬’과 ‘보들보들’이 있습니다. 비가 가늘게 내리는 모습과 천이 부드럽게 닿는 감촉을 말하면서, 소리만으로도 서로 다른 장면을 떠올립니다. 누군가를 ‘선생님’이라 부를지, 이름 뒤에 ‘씨’를 붙일지 고르는 순간에는 상대와 나의 관계를 생각합니다. 우리말에는 우리가 날씨를 느끼고, 사람을 대하고, 마음의 거리를 조절해온 시간이 겹겹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우리의 소리에 맞게 적을 수 있도록 해준 문자가 한글입니다. 한국어와 한글은 각각 말과 글이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합니다.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우리말과 문화는 존재했습니다. 한글에 감사한 것은 이미 살아 있던 목소리를 기록하고 나눌 길을 넓혀주었기 때문입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던 이야기,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은 안부, 혼자 간직하던 마음이 글로 남아 다른 사람과 다음 세대에 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6년은 한글날을 처음 기념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26년 조선어연구회를 중심으로 마련한 ‘가갸날’이 그 출발이었고, 1928년부터 ‘한글날’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글을 함께 기념한다는 것은 우리 삶을 우리 목소리로 이어가겠다는 뜻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적는 “잘 지내?”라는 세 글자 뒤에도, 글을 만들고 가르치고 지켜온 사람들의 시간이 있습니다.

백 년의 기념을 매일의 감촉으로
신시어리는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기념하며 흰 타월에 한글을 담았습니다. 타월 위의 ‘가갸날’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한 글자씩 소리 내어 읽다가, 어느 날 문장 하나가 온전히 내 것이 되던 순간과 그 배움의 기쁨을 함께 지켜온 시간이 겹쳐 보입니다. 글자를 배우는 일은 세상에 말을 걸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더 생기는 일이었습니다.
타월은 하루에도 몇 번씩 손이 가는 물건입니다. 아침에 얼굴을 씻고, 밖에서 돌아와 손을 닦고, 잠들기 전 물기를 훔칩니다. 그 짧은 순간마다 우리 글이 눈에 들어옵니다. 거창한 다짐을 요구하지 않는 방식이라 더 반갑습니다. 언어는 우리의 생활 속에 있으니까요.
고객의 철학이 일상 속에서 사랑받는 방법을 만든다는 신시어리의 믿음도 이런 장면에 닿아 있습니다. 우리말과 글을 향한 감사, 한글날을 기념해온 백 년의 시간, 매일 사용하는 타월이 한자리에 놓입니다.
우리말과 글을 아낄수록 다른 언어에 담긴 삶도 궁금해집니다.
우리에게 밥을 묻는 안부가 있듯, 다른 누군가에게는 함께 커피를 마시자는 짧은 말이 있을 것입니다. 저마다의 언어로 서로를 챙겨온 마음들이 세상의 문화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그 많은 목소리 가운데 우리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오늘 누군가에게 전할 마음을 우리의 글씨로 적을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우리의 글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평범하고도 커다란 일입니다.
Sincerely Yours,
오늘은 맞춤법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되는 신시어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