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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칼라의 옷을 입은 화이트칼라

블루칼라의 옷을 입은 화이트칼라 대표 이미지

팔란티어(Palantir Technologies)의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서 4월 30일에 판매를 시작하자 마자 품절된 제품이 있습니다. 바로 파란색의 프렌치 작업복입니다. 사실 세계 최대 정보기관들과 S&P 500 기업들에게 AI 분석 플랫폼을 공급하는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데이터 기업이 굿즈를 판매한다는 것 자체는 크게 놀랍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라이트웨이트 쇼어 코트(Lightweight Chore Coat)', 즉 프렌치 작업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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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소개 문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19세기 유럽 노동자의 튼튼한 신뢰성에 뿌리를 두고, 팔란티어의 포워드 디플로이드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되었다"고요. 그리고 더 흥미로운 문장도 있습니다. "염색기법(가먼트 다잉)과 세탁과정으로 인해 모든 제품은 고유합니다. 각각의 의류는 개별적으로 처리되어 아름답고 독특한 변형을 만들어냅니다."

AI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회사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작업 작업복을 팔고 있었습니다.

19세기 파란 옷의 기억

쇼어 코트의 역사는 프랑스의 공장 지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쇼어(Chore)'란 단조롭고 반복적인 일상적 노동을 의미합니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유럽을 휩쓸 때, 직물 공장과 금속 공장의 노동자들은 특유의 파란 작업복을 입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를 '블루 드 트라바유(Bleu de Travail)', 말 그대로 '작업의 파란색'이라 불렀습니다.

인디고 염료로 물들인 이 옷은 세탁할 때마다 색이 조금씩 바랬고, 마찰이 닿는 부위는 닳아 옅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이 옷에 고유한 개성을 더했습니다. 입을수록, 세탁할수록 달라지는 옷. 노동의 시간이 쌓일수록 더 자신만의 것이 되는 옷이었습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이와 관련한 날카로운 통찰을 남겼습니다. 1935년 쓴 에세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에서 그는 '아우라(Aura)'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아우라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저 멀리 있는 듯한 한 겹의 특별한 거리감이다."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아우라란 원본이 지닌 특별한 존재감, 즉 그것이 특정 장소와 시간에 실재했다는 흔적입니다. 대량 생산된 복제품에는 없는 것, 손때가 묻고 시간이 쌓인 원본만이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벤야민은 사진과 영화가 예술 작품을 무한히 복제하면서 그 아우라가 소멸된다고 우려했습니다. 기계가 만든 것들은 아무리 완벽해도, 원본이 품고 있는 그 '일회적 현존감'을 가질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팔란티어의 쇼어 코트는 의도적으로 이 아우라를 대량 생산에 이식했습니다. 가먼트 다잉과 효소 세탁으로 각각의 제품에 고유한 색감과 질감을 부여하는 것은, 기계적 복제의 논리를 거스르는 선택입니다.

공장에서 나온 제품이지만, 세상에 동일한 것이 존재하지 않도록 만드는 역설입니다.

데이터 회사가 파는 가장 데이터답지 않은 것

팔란티어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요?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찾아내고, 그 패턴으로 인간의 의사결정을 보조하거나 대체하는 회사입니다. 개별성보다는 패턴을, 우연보다는 예측을, 모호함보다는 정확성을 추구합니다. 그런 회사가 파는 굿즈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논리적으로는 완벽하게 균일하고 최적화된 제품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선택한 것은 입을 때마다 달라지고, 세탁할 때마다 변하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이었습니다. 데이터를 통해 세상을 균질하게 만드는 회사가, 가장 균질하지 않은 물건을 만든 것입니다. 팔란티어는 '포워드 디플로이드(Forward Deployed)' 엔지니어 문화를 자신들의 핵심 정체성으로 강조합니다. 책상에서 코드만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고객의 현장에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하는 실천 중심의 접근입니다.

그래서 19세기 공장 노동자의 작업복은 AI 시대의 현장 엔지니어를 위한 옷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노동의 형태는 바뀌었지만, 현장에 대한 존경과 실천에 대한 믿음은 이어진다는 메시지입니다. 블루칼라의 옷을 입은 화이트칼라. 아이러니이면서 동시에 진심인 굿즈입니다.

굿즈가 말하는 것

기업의 굿즈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로고가 있는 물건과, 철학이 담긴 물건입니다. 전자는 브랜드를 노출시키고, 후자는 브랜드가 무엇을 믿는지를 말합니다. 팔란티어의 쇼어 코트는 명백히 후자입니다.

아마 단순히 "입기 좋은 아우터"를 원했다면 로고 후드티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19세기 노동자의 작업복을 골랐고, 각각을 다르게 만들었으며, 그것을 "Forward Deployed"라고 불렀습니다. 하나의 재킷이 세 가지 철학을 동시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손을 더럽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균일함보다 고유함을 가치 있게 여긴다는 것, 그리고 현장에 있는 사람이 진짜 일을 한다는 것.

어떤 굿즈를 만드느냐는 결국 어떤 철학을 전달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저희는 하나의 제품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6개월 이상, 선정 후에는 60일 이상 직접 사용하며 검증합니다. 스펙 시트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일상 속으로 뛰어드는 것.

그 과정은 단순히 품질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물건이 어떤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시간입니다.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는 오래된 것들만의 특권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랜 고민끝에 도달한 진정성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진정성이야말로 세상에 하나뿐인 무언가를 만들때 가장 필요한 가치일지 모릅니다.

Sincerely Yours,
AI가 모든 것을 바꾸는 시대지만, 진정성의 가치는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신시어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