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Perspectives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전시 이후 남는 물건과 기억을 암시하는 아트숍 대표 이미지

미술관에서 가장 묘한 공간은 전시실이 아니라, 어쩌면 마지막 동선에 놓인 아트숍일지도 모릅니다.

방금 전까지 우리는 하얀 벽 앞에서 인간의 고독, 도시의 폭력, 색채의 침묵, 혹은 작가가 도록 해설에서도 끝내 친절히 설명하지 않은 어떤 개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그런데 전시실을 빠져나서는 순간, 그 모든 숭고함은 머그컵, 엽서, 키링, 포스터, 그리고 조금 비싼 키링으로 바뀝니다.

감동은 상품이 됩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상품은 감동의 흔적이 됩니다.

2010년 뱅크시(Banksy)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Exit Through the Gift Shop의 제목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이라는 이 문장은 농담처럼 들리지만, 사실 현대 예술에 대한 꽤 잔인한 진단입니다. 우리는 예술을 보러 들어갔지만, 나올 때는 결국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집니다. 작품 전체를 살 수 없다면 최소한 그것이 인쇄된 티셔츠라도 사고 싶어집니다.

숭고함은 계산대 앞에서 바코드를 얻습니다.

이것은 예술을 조롱하는 말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술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 아무 감흥이 없었다면 우리는 기념품을 사지 않았을 테니까요.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우리가 손에 쥔 것이 예술의 흔적인지, 예술을 흉내 낸 상품인지, 혹은 상품이 되어버린 예술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진짜와 가짜 사이의 즐거운 불편함

뱅크시가 만든 Exit Through the Gift Shop은 프랑스 출신의 티에리 게타(Thierry Guetta)가 거리 예술가들을 집요하게 촬영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Mr. Brainwash라는 예술가가 되어 대규모 전시를 열게 되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친절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면서도 끝내 우리에게 확실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일이 정말 있었던 일인가요? Mr. Brainwash는 진짜 예술가인가요? 뱅크시는 그를 기록한 것인가요, 아니면 만들어낸 것인가요? 영화는 거리 예술의 역사입니까, 예술 시장에 대한 풍자입니까, 아니면 풍자처럼 보이는 또 하나의 정교한 브랜드 전략입니까?

곤란하게도,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모두 "그럴 수도 있습니다"에 가깝습니다.

미국의 철학자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물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같은 상자라도 슈퍼마켓에 있으면 세제 상자이고, 갤러리에 놓이면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가 됩니다. 물건 자체가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그것을 둘러싼 해석, 맥락, 제도,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즉 예술은 물건 안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둘러싼 이야기 안에도 있다는 뜻입니다. 캔버스 위의 물감, 벽에 남겨진 스텐실, 갤러리 한가운데 놓인 소변기, 혹은 누군가의 이름이 붙은 티셔츠는 그 자체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보는 사람의 질문 속에서 비로소 의미가 생깁니다.

그러니 Exit Through the Gift Shop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영화는 예술과 사기의 경계, 창작과 마케팅의 경계, 진정성과 연출의 경계를 일부러 흐립니다. 그리고 그 흐릿함 속에서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보고 예술이라고 믿었습니까?

모호함은 결함이 아니라 장치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명확한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비즈니스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브랜드 철학도 한 문장으로 정리되어야 하고, 제품의 차별점도 세 가지로 요약되어야 하며, 미팅 자료는 가능하면 15분 안에 끝나야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의 집중력은 생각보다 고귀하지 않고, 회의실의 공기는 종종 철학보다 산소를 더 필요로 하니까요.

그러나 모든 가치가 지나치게 명확해지는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깊이가 사라집니다.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는 양자역학에서 불확정성 원리를 제시했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어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완벽하게 알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과학적 엄밀함을 잠시 빌려오자면, 세상의 어떤 중요한 것들은 너무 정확하게 붙잡으려는 순간 다른 중요한 성질을 잃어버립니다.

브랜드 철학도 비슷합니다.

브랜드가 "우리는 혁신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혁신은 조금 덜 혁신적으로 들립니다. "우리는 진정성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진정성은 어딘가 면접 답변처럼 느껴집니다.

철학은 선언만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철학은 해석될 여지를 가져야 합니다. 받는 사람이 자기 경험 안에서 다시 완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무 닫힌 메시지는 이해되지만 오래 머물지 못하고, 너무 비어 있는 메시지는 자유롭지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합니다.

좋은 브랜드 철학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분명한 중심을 갖고 있지만, 끝까지 설명하지는 않는 것. 방향은 있지만 여백도 있는 것.

말하자면 예의 바른 모호함입니다.

예술이라는 것은 없다. 오직 예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E. H. Gombrich)는 "예술이라는 것은 없다. 오직 예술가들이 있을 뿐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미술사를 시작했습니다. 이 문장은 예술을 낮추는 말이 아니라, 예술을 너무 쉽게 하나의 정의로 가두려는 태도를 경계하는 말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술을 어떤 완성된 범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예술은 늘 경계가 바뀌는 일이었습니다. 성당의 벽화가 신앙의 도구였던 시대가 있었고, 초상화가 권력의 증명서였던 시대가 있었으며, 사진이 등장하자 회화는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다소 실존적인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뒤샹 이후의 현대미술은 아예 이렇게 묻습니다.

"이것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

거리 예술은 이 질문을 다시 거리로 끌고 나왔습니다. 뱅크시의 작업은 갤러리의 흰 벽이 아니라 도시의 회색 벽에서 시작됩니다. 누군가의 허락을 받지 않은 이미지가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나타납니다. 불법 낙서처럼 보였던 것이 사회적 메시지가 되고, 사회적 메시지는 경매장에서 고가의 작품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선물가게 앞에 서게 됩니다.

이것은 예술의 타락일까요, 확장일까요?

아마도 둘 다일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둘 다"라는 대답이 현대 예술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브랜드 철학도 결국 해석의 예술입니다

기업의 브랜드 철학은 대개 아주 진지한 문장으로 존재합니다. 미션, 비전, 핵심가치, 슬로건, 선언문. 모두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문장들이 일상으로 내려오지 못하면, 철학은 회의실 벽면의 액자 안에서만 살게 됩니다. 액자는 훌륭합니다. 다만 대부분 너무 숨겨져 있어 아무도 다시 읽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신시어리는 기업과 기관의 미션과 비전, 가치를 받는 분께 전달하는 방법을 만듭니다. 조금 더 신시어리답게 말하자면, 고객의 철학을 일상 속에서 사랑받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철학을 그대로 인쇄하는 일이 아닙니다. 좋은 브랜드 굿즈는 단순히 로고가 붙은 물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받는 사람이 "이 회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만드는 작은 경험입니다. 말하자면 브랜드 철학의 작은 번역본입니다.

번역이 늘 그렇듯, 여기에도 모호함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설명해버리면 선물은 사용설명서가 됩니다. 반대로 아무 의미도 담지 않으면 선물은 재고가 됩니다. 좋은 선물은 그 중간에서 작동합니다. 받는 사람은 그것을 쓰면서, 만지면서, 책상 위에 두면서, 조금씩 의미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신시어리는 하나의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6개월 이상 살펴보고, 선정할 때는 60일 이상 직접 사용하며 검증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품질 관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물건이 브랜드의 철학을 대신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는 과정입니다.

물건은 말이 없지만, 형편없는 물건은 아주 많은 말을 합니다. 대개 좋지 않은 방향으로 말입니다.

선물가게를 지나야 하는 이유

Exit Through the Gift Shop이라는 제목은 냉소처럼 보이지만, 다르게 읽으면 꽤 따뜻한 문장이 됩니다.

우리는 결국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로 나갑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의미를 그냥 두고 나오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전시를 보고 나면 엽서 한 장을 사고 싶고, 좋은 여행을 하고 나면 작은 돌멩이라도 가져오고 싶으며, 좋은 사람을 만나고 나면 그 순간을 기억할 만한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집니다.

물건은 의미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의미가 머물 수 있는 작은 장소가 됩니다.

문제는 물건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물건에 어떤 태도가 담겼는가입니다. 예술을 흉내 내는 상품은 금방 지루해집니다. 그러나 진심 어린 철학이 좋은 형식으로 번역된 물건은 오래 남습니다. 그것은 예술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받는 사람의 책상 위에서, 서랍 속에서, 하루의 반복 속에서 조용히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브랜드가 바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바로 그것일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브랜드 철학을 암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 속에서 그 철학이 자연스럽게 다시 해석되는 것. 선명한 선언보다 오래 가는 것은 종종 작은 경험입니다. 완벽히 설명된 문장보다 오래 남는 것은 때로 약간의 여백입니다.

모호함은 무책임한 흐림이 아닙니다. 잘 다루어진 모호함은 초대입니다.

받는 사람이 스스로 의미를 완성하도록 남겨둔 자리입니다. 예술이 관객을 필요로 하듯, 브랜드 철학도 결국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Sincerely Yours,
철학과 굿즈 사이에서 오늘도 진지하게 다음 굿즈를 고민하는 신시어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