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함께 탑니다. 출근에 늦은 사람의 8시, 장바구니를 든 이웃의 저녁 6시, 학원 가방을 멘 아이의 밤 9시, 그리고 현관 앞에 놓인 택배가 주인을 기다린 세 시간쯤이 한 칸 안에서 조용히 위아래로 움직입니다.
최근 신시어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아파트 브랜드 자이(Xi)의 캘린더 굿즈를 제작했습니다. 집을 만드는 브랜드가 시간을 세는 물건을 만든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어쩌면 시간과 계절을 기록하는 캘린더야 말로 아파트와 가장 잘 어울리는 굿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한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세계 어디에나 공동주택은 있는데, 왜 한국에서는 유독 아파트가 ‘집’의 표준에 가까워졌을까요? 2022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으로 한국 전체 주택의 64퍼센트가 아파트입니다. 도시뿐 아니라 읍과 면에서도 숫자가 적힌 동과 단정한 베란다의 행렬을 어렵지 않게 만납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집을 설명할 때 마당의 모양보다 브랜드와 평형, 동과 호수를 먼저 말하게 되었을까요?
아파트는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아파트는 한국에만 있는 집도, 한국이 발명한 집도 아닙니다. 고대 로마의 인술라부터 19세기 유럽의 집합주택, 20세기 르 코르뷔지에가 제안한 고층 주거까지 여러 도시는 오래전부터 사람을 수직으로 쌓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땅은 한정되어 있고 도시에 모이는 사람은 많았으니, 집을 위로 올리는 해법은 제법 보편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콘크리트 건물도 서로 다른 사회에 도착하면 전혀 다른 운명을 맞았습니다. 유럽과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대규모 고층 주거는 한때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주택으로 지어졌고, 시간이 지나며 빈곤과 고립의 이미지가 덧씌워지기도 했습니다. 반면 한국의 아파트는 중산층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새집이자 근대적인 생활의 표지가 되었습니다. 건물의 높이가 달랐던 것이 아니라 그 집을 둘러싼 국가의 정책과 사람들의 욕망이 달랐던 것입니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Valérie Gelézeau)는 이를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인상적인 이름으로 연구했습니다. 그는 한국의 아파트 단지를 압축 근대화의 결과이자, 국가와 대기업, 중산층이 함께 만든 공간으로 바라봅니다. 프랑스 지리학자는 우리가 매일 보는 베란다에서 공화국 하나를 발견해 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빨리 도시로 왔습니다
한국 아파트의 첫 번째 설계자는 건축가라기보다 속도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도시는 파괴된 집과 피란민을 함께 품어야 했고, 산업화가 시작되자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떠난 사람들이 서울과 공업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서울 인구는 1960년 약 245만 명에서 1970년 543만 명, 1980년 836만 명, 1990년 1,061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30년 만에 네 배가 넘은 인구를 골목과 단독주택만으로 받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마당이 있는 집을 한 채씩 짓기에는 땅도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같은 면적에 더 많은 가구를 넣고, 수도와 전기와 도로를 한꺼번에 연결하며, 비슷한 도면으로 빠르게 반복할 수 있는 주거 형식이 필요했습니다. 아파트는 이 다급한 문제에 가장 산업적인 답을 내놓았습니다. 집이 장인의 손에서 한 채씩 태어나는 물건이었다면, 이제는 도시계획과 표준 도면, 건설 장비가 함께 생산하는 사회 기반시설이 되었습니다.
한국이 산이 많고 가용지가 적다는 설명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산이 많은 나라는 많고 인구가 밀집한 도시도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특별함은 제한된 땅 위에서 전쟁 복구, 산업화, 수도권 집중, 행정 주도의 대량 공급이 한 세대 안에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천천히 변할 시간이 없었던 사회가 가장 반복 가능하고 확장하기 쉬운 집을 선택한 셈입니다.
마포아파트가 보여준 생활혁명
해방 이후 종암아파트가 1958년에 들어섰고, 1962년에는 오늘날 단지형 아파트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마포아파트가 세워졌습니다. Y자형 여섯 동과 일자형 네 동, 모두 642가구로 이루어진 단지였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의 기록에 따르면 당초 계획했던 10층과 중앙난방, 엘리베이터는 전력난과 자금 부족으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입식 부엌과 욕실을 갖춘 서구식 생활공간은 당시 사람들에게 ‘생활혁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파트가 낡은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최소한의 집으로만 소개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깨끗한 수도, 수세식 화장실, 분리된 방, 반듯한 거실은 더 나은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전시장이었습니다. 마포아파트의 전경은 전쟁의 폐허를 벗어난 새로운 한국을 알리는 이미지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아파트에 입주한다는 것은 주소를 옮기는 일인 동시에, 근대적인 생활로 들어간다는 선언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과정이 늘 반듯했던 것은 아닙니다. 1969년 서울시는 한 해에만 시민아파트 406동을 완공할 만큼 공급을 서둘렀고, 이듬해 와우시민아파트 붕괴라는 참사를 겪었습니다. 빠른 건설이 언제나 좋은 집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뼈아픈 교훈이었습니다. 이후 아파트 정책은 더 안전하고 상품성이 높은 중산층 주거로 방향을 옮겼습니다. 여의도와 반포, 잠실과 강남에 대형 단지가 들어섰고, 1976년 아파트지구 제도는 그 흐름을 더욱 빠르게 만들었습니다.
집이 중산층의 사다리가 되었을 때
1970년대 후반부터 강남의 아파트는 새로운 중산층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사회학자 양명지는 강남 개발을 연구하며 국가 정책과 분양 제도, 부동산 가격 상승이 아파트 소유와 중산층 정체성을 결합했다고 설명합니다. 안정적인 소득을 가진 봉급생활자 가운데 분양 기회를 얻은 사람들은 새 아파트에 입주했고, 집값이 오르면서 자산의 사다리도 함께 올랐습니다.
이때부터 아파트는 편리한 주거 이상의 약속이 됩니다. 좋은 학교에 가까운가, 어느 건설사가 지었는가, 단지 규모가 얼마나 큰가, 앞으로 가격이 오를 것인가가 한 주소 안에 겹쳐졌습니다. 집은 가족이 쉬는 장소이면서 노후를 준비하는 자산, 자녀의 교육환경,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기호가 되었습니다. 한국인이 아파트를 사랑했다기보다, 한국 사회가 사랑하는 안정과 상승의 조건들이 아파트 안에 모였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그 성공에는 그림자도 있습니다. 대단지는 편리한 내부를 만드는 대신 도시의 오래된 골목을 지우기도 했고, 높아진 집값은 들어온 사람과 들어오지 못한 사람 사이에 선명한 경계를 만들었습니다. 재건축의 기대가 집의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를 앞서게 할 때도 있습니다. 아파트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만든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 성장과 불평등, 안전에 대한 열망과 상승에 대한 불안이 가장 또렷하게 비치는 거울에 가깝습니다.
공간의 브랜드가 시간을 건네는 법
이 긴 역사를 지나 다시 자이의 캘린더 앞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달력은 아주 평범한 물건입니다. 어느 집 책상에 놓여도 한 달은 비슷한 칸으로 나뉘고, 월요일 다음에는 어김없이 화요일이 옵니다. 놀랍도록 혁신이 적은 제품입니다.
하지만 집을 만드는 브랜드의 캘린더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아파트의 진짜 가치는 준공일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첫 이삿날과 아이의 입학식, 가족의 생일, 관리사무소의 점검일과 이웃을 초대한 저녁이 쌓이며 비로소 한 세대의 삶이 됩니다. 집이 시간을 담는 가장 큰 그릇이라면, 캘린더는 그 시간을 눈앞에 보이게 하는 가장 작은 도구입니다.
신시어리는 고객의 철학이 일상 속에서 사랑받는 방법을 만듭니다. 그래서 브랜드 굿즈를 만들 때 먼저 묻는 것은 로고를 얼마나 크게 넣을지가 아니라, 그 브랜드가 사람의 삶에서 어떤 장면을 만들고 있는가입니다. 자이가 만드는 것이 단지 높은 건물이 아니라 더 나은 생활의 시간이라면, 캘린더는 그 철학을 매일 한 장씩 경험하게 하는 자연스러운 매개체가 됩니다. 벽에 적힌 거대한 슬로건보다 책상 위의 작은 날짜가 오래 곁에 남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한국의 아파트는 부족한 집을 빠르게 공급하기 위한 해법으로 시작해, 근대적인 생활의 상징이 되고, 중산층의 꿈과 자산의 문법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다음을 물어야 할 때입니다. 얼마나 높이, 얼마나 많이 짓는가를 넘어 그 안에서 어떤 시간을 살게 할 것인가. 편리한 단지를 넘어 어떤 관계와 기억이 자라게 할 것인가.
결국 좋은 집은 평면도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보내고 싶은 내일이 있을 때 집은 사랑받습니다. 그리고 좋은 캘린더 역시 날짜를 알려주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에 무엇을 담고 싶은지 조용히 묻게 합니다.
Sincerely Yours,
그럼에도 전원주택의 로망을 놓지 못하는 신시어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