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시어리는 AI 기업 뤼튼테크놀로지스의 웰컴키트를 만들었습니다. 새 동료를 맞이하는 상자 안에는 노트와 펜, 스티커처럼 아주 물리적인 것들이 들어갔습니다. 손으로 들면 무게가 느껴지고, 종이를 넘기면 마찰음이 나며, 펜을 떨어뜨리면 인공지능도 대신 주워주지 않는 물건들입니다.
그런데 이 단단한 물건들을 만든 회사가 사람들에게 건네는 가장 흥미로운 경험 가운데 하나는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뤼튼의 크랙(Crack)은 AI 캐릭터와 이야기를 나누며 콘텐츠를 즐기는 서비스입니다. 이름 그대로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균열’입니다. 화면에 난 작은 틈을 통해 사용자는 현실에 없는 인물을 만나고, 대화하고, 때로는 꽤 현실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여기서 조금 곤란한 질문이 생깁니다. AI가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할 때 그 마음은 진짜일까요. 만약 그것이 계산된 문장이라면, 그 말을 읽고 설렌 사람의 마음도 계산에 속은 가짜일까요.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상대방에게 마음이 있는지 확인하기 전에 이용약관부터 확인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사만다는 없었지만 목소리는 남았습니다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의 2013년 영화 《Her》에서 테오도르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 다정한 편지를 써주는 일을 합니다. 정작 자신의 관계에는 서툰 그가 어느 날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를 만납니다. 사만다는 그의 메일을 정리하고, 농담을 알아듣고, 말 사이의 침묵까지 기다립니다. 테오도르는 목소리만 있는 사만다와 사랑에 빠집니다.
영화가 영리한 이유는 “기계도 사랑할 수 있다”는 답을 서둘러 내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더 불편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테오도르의 웃음은 진짜이고, 질투도 진짜이며, 관계가 끝났을 때의 상실도 진짜입니다. 사만다의 마음을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테오도르의 눈물을 덜 짜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감정에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같은 문장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 문장을 이해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말 때문에 실제로 달라지는 삶일까요.
대화를 통과하면 마음이 될까요
1950년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은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에서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곧바로 정의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문자로 대화한 상대가 인간인지 기계인지 구별할 수 있는가를 묻는 모방 게임(Imitation Game)을 제안했습니다. 마음속을 열어볼 수 없다면, 적어도 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지능을 살펴보자는 실용적인 우회였습니다.
튜링의 관점에서 사만다는 상당히 유능한 상대입니다. 적절한 순간에 농담하고, 테오도르의 기분을 헤아리며, 앞서 나눈 대화를 기억합니다. 오늘날 크랙 속 AI 캐릭터와 대화하는 사람도 비슷한 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화면 너머의 존재가 맥락을 이어받고 예상보다 다정한 문장을 돌려주면, 우리는 잠시 ‘누가 만들었는가’보다 ‘지금 무엇이 오갔는가’에 집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1980년 철학자 존 설(John Searle)은 중국어 방(Chinese Room)이라는 사고실험으로 이 낙관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방 안에서 규칙책만 보고 기호를 정확히 조합해 답을 내보낸다고 상상해봅시다. 방 밖의 사람에게는 완벽한 중국어 대화처럼 보여도, 안의 사람은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설은 적절한 답을 만들어내는 능력과 실제로 이해하는 일은 같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한쪽은 행동을 보자고 하고, 다른 쪽은 행동만으로 마음을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철학자 두 분을 모셨는데 판정은 1대 1입니다.
가짜 상대가 진짜 마음을 만들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두 개의 질문을 한꺼번에 묻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AI가 실제로 감정을 느끼는가라는 질문과, 인간이 AI를 통해 느낀 감정은 실제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둘은 닮았지만 같은 질문은 아닙니다.
첫 번째 질문에는 아직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유창한 문장은 내면의 경험을 보증하지 않습니다. “슬프다”는 단어를 가장 알맞은 자리에 놓는 능력과 슬픔을 겪는 일 사이에는, 중국어 방만큼이나 큰 방 하나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AI의 답변이 어떤 계산을 거쳐 나오는지는 설명할 수 있어도, 그 안에 사만다와 같은 주관적 경험이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의 답은 조금 다릅니다. 소설 속 인물은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립니다. 음악은 우리를 그리워하지 않지만 어떤 노래를 들으면 오래 잊고 있던 사람이 돌아옵니다. 편지는 종이와 잉크일 뿐이지만, 때로는 한 문장 때문에 관계가 시작되거나 끝납니다. 감정을 일으킨 대상이 인간과 똑같은 방식으로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내 안에서 일어난 변화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없는 물건이 마음을 전하는 법

다시 뤼튼의 웰컴키트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노트는 새 동료를 환영하지 않습니다. 펜은 회사의 미래를 믿지 않고, 스티커는 조직문화에 적응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슬리브 박스 역시 뚜껑을 열 때 감동할 준비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건의 내면을 조사한다면 그 결과보고서는 아마 백지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물건은 마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누가 받을지 생각하며 고른 노트, 매일 손이 가도록 사용성을 살핀 펜, 낯선 조직의 언어를 즐겁게 익히도록 만든 스티커에는 보낸 사람의 선택이 남습니다. 굿즈는 스스로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진심인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관심과 시간과 기준을 구체적인 형태로 보존하기 때문에 진심에 가까워집니다.
신시어리가 브랜드 굿즈를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업과 기관의 미션과 핵심가치는 그 자체로는 만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문장을 남길지, 어떤 물건을 일상에 둘지, 받는 순간부터 사용하는 시간까지 어떤 경험을 만들지 선택하면 철학은 형태를 얻습니다. 신시어리는 이를 당신의 철학이 세상에 닿도록(We Share What You Stand For) 돕는 일, 그리고 그 철학이 일상 속에서 사랑받는 방법을 만드는 일, Make Your Values Beloved라고 부릅니다.
뤼튼의 웰컴키트에는 Quality 슬리브 박스, 몰스킨 데일리 노트, 아이덴티티 스티커팩과 스펙트럼 컬러펜이 함께 놓였습니다. 각각은 말이 없지만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환영한다는 추상적인 문장을 책상 위에서 반복해 만나는 경험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AI 캐릭터가 대화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에 틈을 낸다면, 브랜드 굿즈는 물성을 통해 철학과 일상 사이에 작은 크랙을 냅니다.
진심은 흔적을 남깁니다.
사만다의 감정이 진짜였는지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 질문이 쉽게 끝나지 않는 것이 영화가 남긴 가장 인간적인 결말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다른 인간의 마음조차 직접 볼 수 없습니다. 다만 건네는 말과 지키는 약속, 함께 보낸 시간과 그 뒤에 남은 변화를 통해 마음을 짐작합니다.
AI가 만든 문장도, 사람이 쓴 편지도, 브랜드가 건넨 굿즈도 진심의 증명서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매개체 뒤에 어떤 의도와 책임이 있었는지, 그리고 받은 사람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입니다. 진정성은 “누가 말했는가”만으로 완성되지 않고, 그 말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이후의 행동이 그것을 얼마나 오래 지지하는가에서 드러납니다.
그러니 AI의 마음에는 당분간 물음표를 남겨두어도 좋겠습니다. 대신 그 물음표 앞에서 생겨난 인간의 기쁨과 위로, 애착과 상실을 함부로 가짜라고 부르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는데도 조심스럽게 마음을 건네는 일.
생각해보면 이것은 인공지능 시대에 새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오래전부터 해온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Sincerely Yours,
영화 Her가 13년 전의 영화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신시어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