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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는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가

가치는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가 대표 이미지

얼마 전, 갤러리에 사진을 업로드하면서 McKinsey & Company의 이름이 새겨진 웰컴키트를 발견하였습니다. 신시어리에서 맥킨지의 의뢰로 만든 굿즈였습니다.

맥킨지의 웰컴키트를 보고 있자니 신시어리의 초창기가 떠올랐습니다. 회사를 막 시작했을 때 저희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맥킨지의 창업기 정신을 세운 마빈 바우어(Marvin Bower, 1903-2003)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기업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최고경영자의 관점, 사실에 근거해 끝까지 생각하는 태도, 그리고 높은 원칙이 조직의 힘을 더 크게 만든다는 믿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맥킨지의 굿즈에 담긴 ‘가치’를 생각하다 보니 조금 난처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가치(Value)라는 말은 도대체 무엇을 뜻할까요. 가격표에서는 교환할 만한 금액이고, 고객에게는 쓸모이며, 재무제표에서는 기업가치가 됩니다. 철학에서는 옳다고 믿는 원칙이고, 데이터에서는 변수에 들어 있는 숫자입니다. 같은 단어가 오전 회의에서는 신념이었다가 오후 회의에서는 할인율이 됩니다. 가치라는 단어는 참 성실합니다. 어느 부서에 보내도 자기 몫의 일을 찾아냅니다.

McKinsey & Company 웰컴키트

높은 원칙으로 회사를 만든 사람

1933년 맥킨지에 합류한 바우어는 훗날 회사를 단순한 사업체가 아니라 전문직 집단으로 만들었습니다. 고객을 ‘customer’가 아닌 ‘client’로 부르고, 사실과 독립적 판단을 중시하며, 필요할 때는 고객과 조직 안에서 이견을 말하는 것을 의무로 삼았습니다. 그에게 원칙은 벽에 걸어두는 훌륭한 문장이 아니라, 수익과 판단이 충돌하는 순간 무엇을 선택할지 정하는 운영체계였습니다.

바우어는 『The Will to Manage』에서 높은 원칙을 가진 기업은 사람들이 옳은 일을 확신 있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추진력과 효과를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높은’ 보다 ‘작동하는’ 에 있습니다. 아무리 근사한 원칙도 견적을 정할 때, 사람을 채용할 때, 불편한 사실을 보고할 때 쓰이지 않는다면 액자 속 문장에 불과합니다. 액자는 대개 수평을 잘 맞추지만 조직까지 정렬해주지는 못합니다.

이 생각은 훗날 맥킨지 7-S 모형의 한가운데 놓인 Shared Values와도 닿아 있습니다. 전략(Strategy), 구조(Structure), 시스템(Systems), 역량(Skills), 인재(Staff), 스타일(Style)은 모두 중요하지만, 일곱 요소의 중심에는 조직이 함께 이루려는 것, 즉 공유가치가 자리합니다. 그림의 중앙에 있다고 자동으로 가장 중요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나머지 여섯 가지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면, 조직은 잘 설계된 부품을 잔뜩 가진 채 목적지를 잃은 기계가 됩니다.

Shared Values의 ‘공유’는 모두가 같은 단어를 외운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같은 상황에서 비슷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품질과 일정이 충돌했을 때 무엇을 먼저 지킬 것인지, 큰 고객의 요구가 우리의 원칙과 어긋날 때 어디까지 말할 것인지, 당장의 매출과 오래 남을 신뢰 중 무엇에 무게를 둘 것인지. 가치가 공유되었다는 사실은 구호의 음량이 아니라 선택의 일관성으로 드러납니다.

사람은 숫자가 아니라 벡터다

여기서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유명한 비유가 등장합니다. 2017년, 허브스팟 공동창업자 다메시 샤(Dharmesh Shah)는 머스크와 저녁을 먹으며 여러 회사를 어떻게 동시에 움직이는지 물었습니다. 머스크의 답은 짧았습니다.

“회사 안의 모든 사람은 하나의 벡터이며, 회사의 진전은 그 벡터들을 모두 더한 결과로 결정된다.”

벡터는 크기와 방향을 함께 가진 양입니다. 조직에 빗대면 크기는 한 사람이 가진 능력과 에너지이고, 방향은 그 힘이 향하는 목표입니다. 열 명의 뛰어난 사람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열 배의 진전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다섯 명이 동쪽으로 달리고 다섯 명이 서쪽으로 달린다면, 모두 땀은 흘렸는데 회사는 출발한 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다. 회의는 매우 치열했고 달력은 빈틈없었지만, 결과 벡터는 0입니다. 조직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형태의 제자리걸음입니다.

이 비유는 수학적으로도 꽤 정확합니다. 어떤 사람의 힘이 목표 방향에 실제로 보태지는 양은 그 힘의 크기에 방향 차이의 코사인(cosine)을 곱한 값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방향이 같으면 각도는 0도이고 cos 0°는 1이므로 힘이 온전히 더해집니다. 90도로 어긋나면 cos 90°는 0이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목표 쪽 진전에는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180도로 반대라면 값은 -1이 됩니다. 이때 유능함은 역설적으로 더 큰 후퇴를 만듭니다. 아주 빠른 배가 훌륭한 엔진을 달고 목적지 반대편으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사람을 정말 화살표로 취급해서는 곤란합니다. 사람에게는 의심도 있고, 양심도 있고, 때로는 방향을 바꿔야 할 충분한 이유도 있습니다. 모든 벡터를 한 줄로 세운 조직은 정렬된 조직일 수도 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아주 효율적으로 달리는 조직일 수도 있습니다. 바우어가 ‘이견을 말할 의무’를 중시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좋은 정렬은 질문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더 옳은 방향을 함께 찾는 일입니다.

경영자의 일은 각도를 줄이는 것

이제 경영자의 일을 조금 다르게 정의해볼 수 있습니다. 경영자는 조직에서 가장 큰 화살표가 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화살표가 왜 같은 방향을 향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사람입니다. 전략을 세우는 것은 목적지를 정하는 일이고, 구조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는 일이며, 가치를 공유하는 것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방식까지 합의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가치의 정렬은 강제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정렬이 아니라 사고의 외주화에 가깝습니다. 좋은 조직에서는 디자이너가 아름다움을, 재무 담당자가 지속가능한 수익을, 운영 담당자가 정확한 납기를, 품질 담당자가 안전과 완성도를 말합니다. 서로 다른 방향처럼 보이는 이 목소리들을 하나의 상위 가치 아래에서 더하는 것이 경영입니다. 각자의 전문성을 지우는 대신, 그 전문성이 같은 목적에 기여하도록 각도를 조정하는 일입니다.

신시어리도 이 생각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고객의 철학(Values), 기념해야 할 순간(History), 그것을 일상에 전하는 매개체(Collections)를 하나의 구조로 바라봅니다. 고객이 지키려는 가치를 먼저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아름다운 굿즈도 방향을 잃습니다. 반대로 가치가 선명하면 제품의 소재, 그래픽, 포장, 배송 경험처럼 서로 다른 결정들이 하나의 결과를 향해 모이기 시작합니다.

신시어리가 갖는 원칙인 Same Vectors, 고객과 같은 방향으로도 바로 이 뜻입니다. 브랜드 철학이 받는 분께 온전히 도달하고 오래 기억되는 것. 그것이 고객의 목표이자 저희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1:1 큐레이션부터 그래픽 리소스, 제작 현황을 확인하는 My Lounge, 배송과 사후관리까지 서로 다른 과정이 같은 목적을 향하도록 설계합니다. 편리함은 서비스의 장식이 아니라, 고객과 제작자가 같은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정렬 장치입니다.

그 과정에서 굿즈는 작은 벡터가 됩니다. 맥킨지의 이름이 새겨진 물건도 단지 로고를 옮겨놓은 기념품이 아니었습니다.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사실에 근거하며, 높은 원칙으로 더 나은 변화를 만들겠다는 조직의 방향을 일상으로 옮긴 매개체였습니다. 철학이 회의실 문장에 머물지 않고 매일 손에 잡히는 형태가 될 때, 구성원은 가치를 읽는 대신 사용하게 됩니다. 반복해서 사용한 가치는 어느 순간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된 가치는 문화가 됩니다.

같은 단어보다 같은 방향

가치는 여전히 여러 뜻을 가질 것입니다. 투자자는 기업가치를 말하고, 고객은 사용가치를 말하며, 철학자는 도덕적 가치를 물을 겁니다. 굳이 하나의 정의로 정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조직이 어떤 순간에 무엇을 가치 있다고 선택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지입니다.

마빈 바우어가 세운 높은 원칙, 맥킨지 7-S의 Shared Values, 일론 머스크의 Vector Alignment는 서로 다른 시대의 언어지만 같은 질문으로 모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힘을 쓰고 있는가. 경영자의 일은 사람들을 더 세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에 충분히 선명한 답을 주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방향이 분명해지면 작은 힘도 더해지고, 방향이 흐려지면 큰 힘도 서로를 지웁니다.

사진 속 맥킨지의 웰컴키트는 이제 신시어리의 갤러리에서 누구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안에 든 물건들의 방향은 이제 저마다 다른 책상과 일상으로 흩어졌을 겁니다. 그래도 그 물건이 전하려던 가치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철학은 모두를 똑같이 만들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다운 크기를 잃지 않은 채, 함께 더 멀리 갈 수 있는 방향을 만들어줍니다.

Sincerely Yours,
오늘도 회의의 벡터 합이 0이 아니었기를 조용히 계산해보는 신시어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