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Perspectives

공동체의 언어, 유행

신시어리 에디터

회색 군중 모형 사이에 홀로 주황색으로 서 있는 사람 피규어

두쫀쿠의 줄이 짧아질 무렵, 이번에는 찹쌀떡이 줄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성수동에서 시작했다는 과일 찹쌀떡입니다. 찹쌀떡이 뭐라고, 하면서 웃었지만 아내의 요청에 저 역시 주말 아침에는 그 줄의 끝에 서 있었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 받은 찹쌀떡은 맛있었습니다. 다만 인생이 바뀔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 유행이 곧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두쫀쿠가 그랬듯 찹쌀떡도 언젠가 다음 무언가에게 자리를 내어 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줄을 섭니다. 우리는 왜 사라질 것을 알면서 유행을 따를까요. 그리고 따르지 않는 사람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요.

따라 하고 싶은 마음, 달라지고 싶은 마음

이 질문을 백여 년 전에 붙잡고 씨름한 사람이 있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게오르크 지멜(Georg Simmel, 1858–1918)입니다. 지멜은 대도시 베를린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관찰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1905년 「유행의 철학(Philosophie der Mode)」이라는 짧은 글에서 유행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욕구가 있습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을 따라 하며 무리에 속하고 싶은 마음, 다른 하나는 무리에서 구별되어 나만의 무언가를 갖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멜의 통찰은 유행이 이 두 마음을 동시에 채워 준다는 데 있습니다. 두쫀쿠를 먹는 순간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같은 경험을 공유합니다. 동시에 아직 먹어 보지 못한 사람들과는 조금 구별됩니다.

같아지면서 달라지는 것, 이 묘한 이중성이 유행의 정체입니다.

그래서 유행에는 운명처럼 끝이 정해져 있습니다. 모두가 따라 하게 되는 순간 구별의 기쁨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지멜은 유행이 시작의 매력과 끝의 매력을 동시에 지닌다고 말했습니다. 유행은 퍼지는 속도만큼 빠르게 저뭅니다. "두쫀쿠 다음은 찹쌀떡"이라는 기사 제목은 지멜이 보았다면 고개를 끄덕였을 문장입니다.

따르는 사람과 따르지 않는 사람

그렇다면 유행을 따르는 사람과 따르지 않는 사람 중 누가 더 현명할까요.

유행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분명한 장점이 있습니다. 지멜은 유행이 개인을 선택의 책임에서 덜어 준다고 보았습니다. 오늘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을지 매번 혼자 결정해야 한다면 꽤 피곤한 일입니다. 유행은 그 결정을 사회가 대신 내려 주는 일종의 안내판입니다. 무엇보다 같은 줄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험도 있습니다. 지멜은 유행을 지나치게 좇는 사람을 '유행의 바보(Modenarr)'라고 불렀습니다. 유행의 앞자리를 놓치지 않으려 끝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잊고 남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만 기억하게 됩니다.

유행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자기만의 기준을 지킵니다. 남들이 줄을 설 때 익숙한 동네 빵집에 가는 사람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멜은 여기서 날카로운 지적을 합니다. 일부러 유행을 거스르는 사람은 사실 방향만 거꾸로 했을 뿐 여전히 유행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두쫀쿠를 먹으니 나는 절대 먹지 않겠다는 결심은, 두쫀쿠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결심입니다. 반대편에 서는 것도 결국 같은 줄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게다가 그 고집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모두가 웃으며 나누는 대화에서 혼자 조용해지는 순간이 생깁니다.

결국 따르는 사람은 자신을 잃을 위험이 있고, 따르지 않는 사람은 공동체를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둘 다 유행에게 주도권을 내어 준 셈입니다.

유행은 말을 겁니다

여기서 유행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는 1967년 『유행의 체계(Système de la Mode)』에서 유행을 하나의 언어로 읽었습니다. 옷은 몸을 가리는 도구이기 전에 무언가를 말하는 기호라는 것입니다.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듯 옷과 장신구가 모여 의미를 만들고, 그 의미는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사람들 사이에서 묻는 "드셔 보셨어요?"는 디저트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날씨가 좋네요"처럼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사였습니다. 두쫀쿠는 올해 초 우리가 함께 쓰던 단어였고, 찹쌀떡은 이번 겨을의 새 단어였습니다. 언어가 혼자서는 의미를 가질 수 없듯, 유행 역시 함께 쓰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생깁니다. 그 단어를 아는 사람끼리는 처음 만나도 웃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유행을 따른다는 것은 반드시 자신을 잃는 일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지금 쓰고 있는 말로 대화에 참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외투를 입는 사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유행을 대해야 할까요. 지멜은 흥미로운 답을 남겼습니다. 그는 내면이 단단한 사람일수록 겉으로는 기꺼이 유행을 따르기도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유행은 외투와 같습니다. 바깥의 것은 사회의 흐름에 맡기고, 그렇게 아낀 힘으로 내면의 자유를 지키는 것입니다. 외투를 갈아입는다고 사람이 바뀌지 않듯, 유행을 따른다고 그 사람의 중심이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성숙의 한 모습이지 아닐까요. 유행을 따르든 따르지 않든 크게 상관없을 만큼 내 안에 기준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 사람은 줄을 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줄을 서지 않아도 고집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따를지 말지를 유행이 아니라 자신이 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여유는 놀랍게도 포용으로 이어집니다. 동료가 한 시간을 기다려 사 온 찹쌀떡을 "나는 이런 거 안 먹어"라며 밀어내는 사람과, 맛이 어떻든 하나를 집어 들고 "줄 길었죠?"라고 묻는 사람을 떠올려 봅니다.

두 사람 모두 두쫀쿠에 대한 평가는 같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두 사람이 만드는 온도는 전혀 다릅니다. 유행에 참여하는 것은 때로 나의 취향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받아 주는 일입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1798)에서 유행 밖의 바보가 되느니 유행 속의 바보가 되는 편이 낫다고 썼습니다.
엄격하기로 유명한 칸트가 이런 말을 남겼다는 점이 조금 의아하긴 합니다. 아마 그도 혼자 시큰둥한 사람 - 주로 철학자 - 가 공동체에서 얼마나 외로운지 알고 있었을 겁니다.

브랜드에게도 유행은 언어입니다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브랜드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브랜드 역시 매년 새로운 유행 앞에 섭니다. 올해의 색, 올해의 소재, 올해의 굿즈가 쏟아집니다. 철학이 흐릿한 브랜드는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합니다. 유행을 남김없이 따라가다 정체성을 잃거나, 유행을 무조건 외면하다 사람들의 대화에서 멀어집니다. 지멜이 말한 유행의 바보와 반유행의 고집쟁이가 브랜드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셈입니다.

반대로 철학이 성숙한 브랜드에게 유행은 위협이 아니라 선택지가 됩니다. 따를 수도 있고 따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결정의 주도권이 유행이 아니라 브랜드에게 있다는 점입니다. 기준이 분명하면 유행의 언어를 빌려 철학을 더 친근하게 말할 수 있고, 기준에 맞지 않는 유행은 담담하게 지나 보낼 수 있습니다.

신시어리에게도 따르지 않은 순간과 따른 순간이 있었습니다. 신시어리가 처음 시작했을 때 '브랜드 굿즈'라는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판촉물은 행사가 끝나면 서랍 속에 잠드는 물건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흐름을 따르는 대신 누구나 갖고 싶어서 버려지지 않는 굿즈를 만들겠다는 철학을 세웠고, 웰컴키트와 브랜드 굿즈라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왔습니다.
반대로 철학을 더 즐겁게 전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이미 사랑하는 놀이의 문법을 기꺼이 빌리기도 합니다. 손잡이를 돌리면 고객의 메시지가 담긴 캡슐이 굴러 나오는 캡슐 머신이 그런 예입니다.

캠퍼스 채용 행사에서 학생들이 캡슐 머신에서 뽑은 캡슐을 들고 웃고 있는 모습
신시어리 캡슐굿즈 - 브랜드에그

이 판단을 지탱하는 것은 취향이 아니라 기준입니다. 신시어리는 하나의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6개월 이상을 들이고, 제품을 선정할 때는 60일 이상 직접 사용하며 검증합니다. 그 시간은 유행을 걸러 내는 거름망과 같습니다. 반짝이는 유행이라도 60일을 매일 써 보고 나면, 그것이 고객의 철학을 오래 전할 물건인지 한 계절의 단어로 끝날 물건인지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함께 쓰는 말로 말한다는 것

언젠가 두쫀쿠도, 한정선의 찹쌀떡도 추억 속의 단어가 될 것입니다. 몇 년 뒤 누군가 "그때 그거 기억나요?"라고 물으면, 우리는 맛보다 그 줄에 함께 서 있던 사람들, 그리고 동료들과 캔틴에서 나눈 대화를 먼저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유행은 사라지지만 그 유행 덕분에 함께 웃었던 시간은 남습니다.

유행을 따를지 말지는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있는지, 그리고 그 기준을 지키면서도 공동체가 쓰는 말에 기꺼이 귀를 기울일 수 있는지입니다. 사람에게 그것은 성숙이라 부를 수 있고, 브랜드에게 그것은 철학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다음 유행이 찾아와 누군가 탕비실에 낯선 상자를 올려 둔다면, 일단 하나를 집어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줄이 많이 길었죠?"

Sincerely Yours,
두쫀쿠, 찹쌀떡, 무엇이던 맛있어서 좋아하는 신시어리 드림